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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항리사지& 감은사지&문무대왕릉
    쉬는시간 /소풍&여행&기타 2016. 11. 15. 20:09

     

     

     

     

     

     

     

     

     

    석굴암에서 불국사쪽으로 내려오다가 아래그림의 삼거리에서

     

    감포방면으로 진행하여 경주 장항리사지, 감은사지, 문무대왕릉 으로 간다.

     

     

     

     

     

     

     

    "경주 장항리사지" 토함산 동남쪽 계곡의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로

     

    대종천 계곡 사이의 좁은 공간을 이용하여 쌍탑을 세우고 그 뒤쪽 중앙에 금당을 배치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맨위 이미지의 삼갈래에서 풍력발전단지 와 토함산자연휴양림을 지나고 나면

    왼쪽에 조그마한 주차장이 나타나며  절터가 있는 계곡은 대종천의 상류로 감은사지 앞을 지나 동해로 흘러간다.

     

    건너편으로 대종천 상류의 물길을 건너간다.

     

    절을 지은 연대나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데, 장항리라는 마을 이름을 따서 장항리사지라 불러오고 있다. 

     

    절터에는 서탑인 5층석탑과 파괴된 동탑의 석재, 그리고 석조불대좌가 남아 있다.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 안내판 ~

     

    경주 장항리 사지 안내판 ~

     

    절터에서 건너보이는 주차장 - 오른쪽으로 찻길을 올라가면 석굴암쪽이다.

     

    국보 제236호, 오층석탑 서탑과 그리고 오른쪽에 나즈막하게 보이는 모아놓은 동탑 유물이다.

     

     

    서탑은 일제시대에 도굴범이 탑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을 훔치기 위해

    폭파시켜  파괴한 것을 수습하여 다시 세웠으며 이중기단의 오층석탑으로 되어있다.

     

    1층의 사면에 있는 도깨비 형상의 문양이 독특하다.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 동탑은 계곡주변에 흩어져 있던것을 주어다 절터에 모은것이라고 한다.

     

    동탑도 서탑처럼 사면에 문양이 새겨져있다.

     

    금당터에 산재해 있는 석물들이다.

     

     

     금당으로 보이는 건물터에 있는 석조불대좌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랫단은 팔각형으로 조각이 새겨져 있고 윗단은 연꽃을 조각한 원형대좌이다.

     

    이 석조불대좌 위에 모셔졌던 것으로 보이는 석조불상은

     여러 조각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하였으며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이다.

     

    장항리 사지는 쌍탑 1금당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을 보이나, 아직 강당과 회랑의 자리는 밝혀지지 않고있다 한다.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절터를 다시 바라본다.

     

    당겨보았다.

     

     

     

     

     

     

     

    경주,장항리 사지를 둘러보고 사적 제31호, "감은사지" 로 이동해왔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문무왕(文武王)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역사를 시작했으나

    중도에 죽자 그의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즉위해 682년에 완성했다. 지금은 보수공사중 ~~

     

    넓직한 데크 통로를 진행하여 . . . .

     

    오른쪽으로 계단을 올라선다.

     

    올라서니 중문터가 위치하고 있다.

     

    중문터에서 바라보는 동탑이다.

     

    원래 이런 형상이었는데, 보수관계로 제대로 볼수가 없다.

     

    중문터에서 왼쪽 서탑이다.

     

    서탑의 원래 형상이다.

     

    금당터로 올라선다.

     

     

    금당의 기단 아래 동쪽방향에 구멍을 두어

    이 통로를 따라서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들어와 서리도록 했고,

    또 유서에 따라 유골을 매장한 곳이 절의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절의 본래 이름은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진국사였으나 신문왕이 부왕의 호국충정에 감사해 하여 감은사로 고쳐 불렀다한다.

     

    1960년과 1979~80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이탑식가람배치로

    남북보다 동서 회랑의 길이가 길며, 양 탑의 중앙부 뒷면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금당터가 확인되었다.

     

      금당의 바닥구조는 H자형의 받침석과 보를 돌다리처럼 만들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석재 유구를 동서방향으로 깔아 우물마루 모양으로 된것은 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된다고한다.

     

    금당터에서 뒷편으로 저만치에 강당터이다.

     

    원래 앞면 8칸, 옆면 4칸이었던 북쪽 강당은 후대에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고쳐 지은 것도 밝혀졌다 한다.

     

    강당터 오른쪽 뒤로 느티나무가 멋스럽다.

     금당터에서 역광으로 바라보는 서탑 이다.

     

    위 이미지와 같은 위치,금당터에서 바라보는 동탑이다.

     

    공사내용이 석탑보존처리, 기 보수부위 보강 및 색 맞춤이라고 . . . .

     

    다시, 중문터에 나와서 돌아보는 서탑이다.

     

    역시, 중문터에서 돌아보는 동탑이고 . . . .

     

    왜놈들의 침입은 그 옛날 아주 오래전부터 심각했다는것 . . . .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을 싫어한다. 어떤이는 일본을 배워야한다고 하던데 . . . .

     왜 ?  다른나라도 아니고 꼭, 일본이냐고 물어보고 싶다. 설마 친일파 후손들은 아니겠지  ~ ?

     

    나는 일제강점기에 북해도까지 끌려갔다가 돌아오신 내 아버지의 젊은시절을 들어서 잘알고있다.

    옆에서 강제노역의 채탄작업에 죽어가는 동포 조선인들을 보면서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까 ?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을런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함께 끌려가신 고모부님은 생사조차 확인불명이다.

    평생을 병마와 싸우며 가난에 힘들게 사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세살아래 고모님의 일생도 정말 힘든생이셨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슬픔을 뒤로한채 졸속으로 맺은 협상 ~   당사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 친일세력에 밀려서 소녀상을 철거한다고 . . . .  정말로 환장하고 통탄할일이다.

    요즈음에 와서 친일매국노 후손들이 하는 말 ~   우리나라 대한민국를 빨갱이들이 다 망친다고 떠든다.

    원래부터 지네들이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변명아닌 변명을 하고있다. 죽일놈들이 득세하여 판을 치는 세상이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어제 그저께는 일본과 군사정보 교환 협약에 가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

    야당과 생각있는 사람들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 이틈에 졸속처리라고 하던데 . . . .

     

    이른오전 시간에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기분이 좋았는데, 감은사지에 와서는 어째 아니다는 느낌이다.

    평생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만은 아닐거고, 지금 우리나라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다.

    내가 찍어주지 않았던 사람이지만 당선자에게 잘해주기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준비가 되었다던 그 여자 ~ 

     무슨 준비했다는 것인지 ?  한마디로 평법한 우리내 생각보다도 못한 사람이 아닌가 ?   하는 의문도 든다.

    우리국민들의 복이 이거지 싶다. 아니다는것이 뻔하게 보이는데도 찍어주었으니 . . . .   ㅋㅋㅋ

     

    문무대왕 처럼 나라를 사랑하는 통치자가 우리국민을 위해 일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

     

     

     

     

     

     

     

    감은사지에서 동해바다에 있는 사적 제158호, "문무대왕릉" 으로 이동해왔다.

     

     

     

    안내판 ~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것 같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한 뒤

     유골을 이곳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681년 문무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지내고, 이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이 바위는 둘레가 200m쯤 되는 천연 암초인데 사방으로

     바닷물이  드나들수 있는 물길을 터 놓아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물길은 인공을 가한 흔적이 있고, 안쪽 가운데에 길이 3.7m, 높이 1.45m, 너비 2.6m의 큰 돌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어  이 돌 밑에 문무왕의 유골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다. 

     바위의 안쪽 가운데에서 사방으로 물길을 낸 것은 부처 사리를 보관하는 탑의 형식을 적용한 것으로도 볼수있다 한다.

    682년(신문왕 2) 양북면 용당리에 감은사를 지어 부처님의 힘을 빌어서 왜구의 침입을 막으려 했다.

     

    삼국유사에는 감은사의 금당 아래를 깎아 동해로 구멍을 내어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수 있도록 했다고 기록하고있다.

     

    내가, 얼마전에 다녀온 울산의 대왕암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 . . .

    사실인즉, 나도 울산에 다녀오기전까지 정확하게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서 혼동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쉽게 설명을 하면 ~

     

    이곳 경주의 문무대왕릉은 문무왕의 유골이 뿌려진 곳이고 . . . .

     

    울산에 있는 대왕암은 문무왕비가 장사 지내진 곳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동해바닷가에서 아내는 즐거워한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가 않아서 다시 경주시내로 들어가자 재촉하니, 아쉬워한다.

     

    이렇게 1박2일 일정의 경주여행 첫날, 오전일정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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