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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 탐방,4일쩨 ~
    산행 이야기 ~/기타지역 2016. 7. 1. 21:45

     

     

     

     

     

     

     

     

     

     

     

     

     

     

     

    백두산 탐방 4일째 이다.

     

    오늘 일정은 통화에서 집안으로 이동해서

     

    광개토대왕비,광개토대왕릉,장수왕릉을 둘러보고

     

    북한과 접경을 이루는 수풍댐 부근의 복숭아섬 으로 이동,

     

    압록강 유람선을 타고서 강 건너의 북한땅을 가까이에서 조망하고  

     

    저녁식사후, 단동시내에 있는 압록강호텔에 도착하게되는 것이다. 

     

     

     

     

     

    백두산탐방 4일째 아침이 밝았다.

    첫날 묵었던 해풍호텔 입구에 이런 것이 설치되어 있네 ~

     

    오늘 신랑,왕진파와 신부,좌심동이 해풍호텔에서 결혼식이 있는것 같다.

     

    신랑,신부가 도착하게 되면 쏘려고 이렇게 입구에 축포가 준비되어 있다.

    가이드가 잠시동안 중국인들의 결혼풍습을 이야기 하는데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해풍호텔을 출발해서 통화시내를 빠저 나간다.

     

     오늘 이동할 코스를 화살표로 표시해보았다.

     

    한마디로 통화시는 크다는 느낌이다.

     

    통화를 빠저 나가기전에 금성원죽섬유 라는 곳을 들러서, 나는 도수가 높은 고랑주를 한병 구입했다.

    서울에 있는 아들이 집에오면 아내에게 안주 좋은 놈으로 만들라고 해서 함께 마실거다. 이번에 용돈을 얻었으니까 ~

    다른 일행들은 이것저것 많이 구입, 가이드가 입이 찟어지고, 기분이 좋은지 일행전원에게 라텍스 목 벼게를 선룰한다.

     

    통화에서 제일 큰 제약회사을 지나친다.

     

    한참을 벗어나니 이제부터 시골 냄새가 난다.

     

    휴게소에서 쉬어간다.

     

    휴게소에는 오녀봉유객복무중심 이라고 씌였다.

     

    시골이지만 잘 꾸며져 있었고 . . . .

     

    그런데 이곳까지 장뇌삼 장사꾼이 따라오고 있다.

    대단하다. 이런 장사꾼들은 우리나라 관광차를 만나면 계속해서 따라 붙는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중국여행에서 제일 첫번째로 주의할 사항이 이런것을 사지말아야 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이런것은 거의 대다수가 장뇌삼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더덕보다 못하다라고 생각하면된다.

     

    진행길 죄측 풍경 - 이제부터 산세가 험악해진다.

     

    진행길 왼쪽으로 오년봉 입구 를 지나치고 . . .

     

    차창 밖으로 인삼밭이다. 이런것이 장뇌삼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

     

    공안이 검문을 하고 있는 장소에 도착해서 한참동안 절차를 밞는다.

    우리로 말하면 경찰이 올라와서 안전벨트 착용여부도 확인하고 차량에 이상한 물건이 실려있나 검사를 한다.

    그리고 자기네들이 정한 지점까지 이동시간을 측정한다고 한다. 정해진 거리를 정해진 시간에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산악지역이다 보니까 사고발생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확실하게 하는것 같았다.

     

    이제, 집안 지역으로 경계를 넘어섰다.

     

    기찻길을 건너고 . . . .  6.25사변때 이 선로을 이용해서 북한으로 군수물자가 수송되었다고 가이드가 그런다.

     

    태왕민속촌 ~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간다.

     

    태왕민속촌 입구 오른편에는 이렇게 광개토대왕(호태왕) 에 관한 것들이 있고 . . . .

     

    그리고 앞쪽으로 담장 너머는 집안시가 보이고 멀리는 압록강 너머로 북한의 만포지역이다.

     

    점심을 잘 먹었다. 이곳은 한국인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식당의 화단에는 앵두가 빨갛게 . . . .

     

    맛이 있어 보인다. 

    우리차 버스기사, 한웅큼씩 따 먹는다.

    맛있다고 하며, 나를 보고 같이 따 먹자고 . . . . ㅎㅎ~~

     

    여행에 지친 몸이 잠시동안 이지만 회복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공작새도 있고 . . . .

     

    식당을 나와서 가까이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입구에 도착했다.

     

    아내와 함께 ~

     

    이웃사촌 부부 ~

     

    입구로 들어간다.

     

     

     

    광개토대왕 은 ~ 

     

     

     

    저만치에 광개토대왕비가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 비각속에 들어있다.

     

    다른 관광객 팀이 먼저 도착해 있어서 광개토대왕릉을 먼저 보고난 다음에 돌아올거다.

     

     느릎나무가 심어진 가로수길을 잠시동안 따라가면 ~

     

    저편에 허물어저 관리가 허술해 보이는 광개토대왕릉이 나타나다.

     

    우리 역사에 정말로 훌륭한 왕 이었는데 . . . .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그렇다. 그리고 윗쪽으로 뭐가 보인다.

     

    당겨보니 이렇게 보이고 . . . .   저곳으로 ~

     

    빙 ~   돌아서 올라간다.

     

    다 올라왔다.

     

    광개토대왕릉 내부의 모습이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출입이 가능하고, 습기가 가득차있다.

    경주에 있는 천마총 ~  이런곳과는 비교할수 없어도 이것은 정말 아닌것같다.

     

    광개토대왕릉 위에서정면으로 내려보는 풍경 ~

     

    정면에서 왼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집안시가지 너머로 북한의 만포지역이다.

     

    당겨보니 북한땅은 벌거숭이 민둥산이다.

     

    이렇게 광개토대왕릉 위에서 찰깍 해보고 . . . .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곳 집안시에는 주변에 누구의 릉 인지 모르는 릉이 많이 았다고 . . . . .

    아마, 짐작하건데  고구려 왕들의 무덤일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역이 옛 고구려 도읍지 였으니 ~

     

    위 이미지를 당겨보면 이렇게 누구으 무덤인지 모르는 릉 이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렇게 버려두지 않을것인데 . . . .  

    이렇게 엉망으로 관리해놓고, 위대한 우리의 고구려역사가 자기네들 북방의 소소민족의 역사라고 한다. 이게 바로 동북공정이다.

     

    씁슬한 마음으로 내려온다.

     

    다시 광개토대왕비 쪽으로 돌아가면서 . . . .

     

    멀리에 북한지역에 굴뚝 같은게 보인다.

     

    당겨보니 이런 그림이다.

    가이드에게 저게 뭐냐고 물어보니 ?

    북한의 철강공장 굴뚝인데, 지금도 가동중 이라고 한다.

     

    약간의 더위가 느껴지는 시간이다.

     

    우리차 가이드는 조용조용 한데, 아내와 함께 가고있는 1호차 가이드는 씩씩 ~   선 머슴아 같다. ㅎㅎ~~

     

    광개토대왕비로 돌아왔다.

     

    광개토대왕비 ~    거대하다.

     

     

     

     

     

     

     

     

     

    광개토대왕릉비[ ]

     

    고구려 장수왕( : 413∼491)이 414년에 아버지인 광개토대왕( : 391∼413)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비신이 대석 위에 세워져 있으나, 대석과 비신 일부가 땅속에 묻혀 있다. 높이는 6.39m로 한국 최대의 크기로 고구려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너비는 1.38~2.00m이고, 측면은 1.35m~1.46m로 불규칙하다. 비의 머리 부분은 경사져 있다. 대석은 3.35×2.7m 이다.

     

    네 면에 걸쳐 1,775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통상 알려져 있다.(판독 여부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고 비석이 불규칙하여

     

     글자 수 통계에 이론이 있다.) 본래 비석만 있었으나, 1928년에 집안현 지사 유천성()이 2층형의 소형 보호비각을 세웠고,

     

    다시 1982년 중공 당국이 단층형의 대형 비각을 세워 비를 보호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제1면 1행 ~ 6행)은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추모왕(=동명왕),

     

    유류왕(=유리왕),대주류왕(=대무신왕) 등의 세계()와 광개토왕의 행장()을 기록해 놓았다.

     

    둘째 부분(제1면 7행 ~ 3면 8행)에는 광개토왕 때 이루어진 정복활동과 영토관리(만주 정복, 백제 정벌, 신라 구원,

     

    동부여 및 숙신 정벌)에 대한 내용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해 놓았다. 비문의 기록에 따르면, 광개토왕은 64개의 성()과

     

    1,400개의 촌()을 공파()하였다. 왕의 외정에는 정토복속()과 토경순수()가 있으며,

     

    한반도 내는 전자의 대상이 되어 동일세력권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영락 10년(400)조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왜는 축출의 대상이었고 정토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와 같은 실체를 찾아볼 수 없다.

     

     셋째 부분(제3면 8행 ~ 4면 9행)은 능을 관리하는 수묘인() 연호()의 숫자와 차출방식, 수묘인의 매매금지에 대한 규정이다.

     

     이 부분은 고구려 수묘제()의 실상과 함께 수묘인의 신분 등 사회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연구와 논쟁 ~

    압록강 북쪽에 큰 비가 있다는 사실은 <용비어천가>를 비롯한 조선 전기의 몇몇 문헌에 언급되어 있지만, 조선후기까지 비문을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청의 만주에 대한 봉금제도()가 해제된 뒤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비석이 발견된 소식이 알려지자 여러 서예가나 금석학자들이 탁본을

     

    만들었는데, 초기의 탁본은 대체로 쌍구가묵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다 정교한 탁본을 만들기 위해 불을 피워 비석 표면의 이끼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비면의 일부가 탈락되었고, 또한 석회를 발라 비면을 손상시킴으로써 이후 연구에 논란을 일으켰다. 비문의 내용 가운데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논쟁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 것은 둘째 부분의 신묘년 기사()이다.

    일본에서 처음 입수한 비문은 만주지역에서 정보수집활동을 수행하던 포병 중위 사쿠오[]가 1883년에 가져온 쌍구가묵본이었다.

     

    이를 기초로 참모본부에서 비밀리에 해독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1888년에 요코이 다다나오[]가 아세아협회의 기관지인

     

    『회여록()』 제5집에 <고구려고비고()>를 게재함으로써 일반에게 알려졌다.

     

     여기에서 신묘년 기사를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 등을 깨고 신민으로 삼았다(□□□ : □는 훼손된 문자 )”고

     

     해석했는데, 이후 이 신묘년 기사를 4세기 후반 신공황후()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정벌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이 정설로 정착되었다.

    이에 자극을 받아 한국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선 1908년 간행된 『증보문헌비고』에 비문이 수록되었고,

     

    1909년에는 박은식과 신채호가 언론에 간단히 소개하기도 했다. 민족주의사학자 정인보는 1930년대 말에 저술한

     

    「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문석략()」에서 ‘도해파()’의 주어를 고구려로 보아 “왜가 신묘년에 왔으므로,

     

    (고구려/광개토대왕)가 바다를 건너가 왜를 깨뜨리고 백제와 □□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하여 일본인들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1972년에는 재일동포 사학자 이진희()가 참모본부의 이른바 ‘석회도부작전설()’을 주장하여 큰 파문이 일어났다.

     

    그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현대사는 물론 고대사까지 조작 왜곡하여 정당화하기 위한 조작극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과거 불분명했던 자획까지도 분명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석회도부의 결과로서, 고마쓰[] 탁본을 참고하여

     

     미다쿠[]가 쓴 「고려고비고추가()」가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그 결과 ‘왜이신묘년래도해파’()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진희, 『광개토왕비의 연구』, 일조각, 1982)

    이를 계기로 기존의 임나일본부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1981년 이형구()는 비문 자형()의 짜임새[],

     

    좌우행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자체()의 불균형 등을 근거로 ''는 ''를, ''는 ''를 일본인이 위작()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럴 경우 신묘년 기사는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국으로 조공을 바쳐 왔는데, 그 뒤 신묘년(391)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백제·왜구·신라를 공파해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된다. 이 주장대로라면 일본 사학계의 이른바 ‘남조선경영론’이 근거를 잃게 된다.

    지리적 이점이 큰 중국에서 최근에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1984년에는 중국의 왕젠췬[]이 장기간의 실지조사를 토대로

     

    『호태왕비연구()』를 발표했는데, 그는 이제까지 잘못 읽은 부분은 시정하고 탈락된 문자를 복원했다고 주장하고,

     

     비문의 총 글자를 1,775자로 확정했다. 그리고 비문에 등장하는 왜()를 일본 기타큐슈[]의 해적집단으로 보아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진희의 석회조작설도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에도 한계가 발견되고 있다. 도회부분은 탁공()들이 고가판매를 위한 무지의 소치라고 주장하였는데,

     

     발견 초기의 탁본은 고가 판매를 위한 것이 아닌 것임에도 조작된 것이 나타나는 부분에 대한 해명이 부족하다.

    광개토왕릉비의 내용은 그 주체가 고구려(광개토왕)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왜나 그 외의 것이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이 비는 사료가 부족한 한국 고대사의 실상을 풀어줄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내용의 정확한 판독이 이루어짐으로써

     

     한국 고대사를 분명하게 해줄 것이다. 나아가 한·중·일 3국간 특히 일본과의 관계를 해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3국간의 협동연구가 보다 심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한 결론은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개토대왕릉비 [廣開土大王陵碑] (두산백과)

     

     

     

     

     

     

    비각 앞애서 ~

     

     근처에 있던 일행들과 단체로 촬영 ~

     

     광개토대왕비문 ~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차량으로 잠시 이동하면 아들,장수왕릉이 있는곳에 도착된다.

     

    안내판에는 한글로 이렇게 씌여져 있다. 분명 고구려가 자기네 북방의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 . . .

     

    어쩌겠는가 ?  힘없는 우리가가 ~    그것도 지금은 빼앗겨서 우리땅이 아니니 . . . . .

    앞서가는 우리차 가이드 장수왕릉 입구에서 부터 짜증났다. 입구에 있는 중국놈들이 입장을 지연시켜서 . . . .

     

     

     

    장수왕릉 이다. 우리에게는 장군총이라고 알려져 있던 ~

     

    거대한 장수왕릉의 온전한 모습을 만나니 . . . .

     

    광개토대왕릉에서 상했던 기분이 조금은 개운해진다.

     

    다시 찾기 힏든 장수왕릉에서 흔적을 남겨본다.

     

    이웃사존 부부 ~

     

    사방으로 같은 구조의 모습으로 피라미드 처럼 쌓아올렸다.

    사면에 세개의 거대한 버팀석이 왕릉의 훼손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한쪽면에는 세개의 버팀석 중에 하나가 없어저서 배불뚝이 처럼 튀어 나왔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관광객들이나 아이들이 올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정말로 관리가 허술 . . . .

     

    장수왕릉을 돌아보고 나간다.

     

    밖으로 나오니 왼쪽 저편은 공사중 ~

     

    당겨보니 장수왕 박람관인데, 보수공사중이다.

     

     

    장수왕 은 ~

     

     

     

    위대한 고구려역사가 중국 북방의 소수정권으로 전락되었다. 씁쓸한 기분으로 집안시가지를 지난다.

     

    차창밖으로 국내성터가 시야에 들어온다.

     

    국내성 ~   고구려의 도읍지 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벽터 흔적만이 . . . .

     

     

     

     

     

     

    국내성 ( 國內城 ) 

     

     

    중국 지린 성[吉林省] 지안 현[輯安縣]에 있으며,

     

    통구성(通溝城)이라고도 한다. 둘레 2,686m, 높이 약 6m.

     

     

    국내성 위치도

    국내성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가 졸본에서 이곳으로 천도한 것은 AD 3년(유리왕 22)이며,

     

    427년(장수왕 15) 평양천도 전까지 약 400년 동안 고구려의 도성이었다

    .

    국내성은 평양천도 뒤에도 고구려 3경(三京)의 하나로 정치적·군사적 중심지였으나,

     

    연개소문이 죽은 뒤인 666년(보장왕 25) 권력싸움 과정에서 국내성을 근거지로 삼았던

     

     남생이 당나라로 투항해버림으로써 이곳은 고구려의 영역에서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성의 원형은 많이 손상되었지만 고구려 성곽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어

     

     우리나라 성곽축조양식의 기원을 규명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잘 다듬은 네모꼴의 돌로 쌓은 4각형의 석축성(石築城)으로 아래에는 큰 석재를 놓고

     

     위로 갈수록 차츰 곡선을 줄이는 축조법을 쓰고 있어 견고하고 안정감을 준다.

     

    일정한 간격으로 치(雉)를 설치했으며 성벽 위에는 몸을 숨기고 사격할 수 있도록 만든 여장도 있다.

     

     6곳에 성문이 있고 성의 4모서리에는 각루 터가 있다. 성안에는 남북·동서로 길이 나 있고, 왕궁과 관청이 있었다.

     

    서북방향 2.5㎞ 되는 산악지에 위나암성(尉那巖城) 또는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이라 부르는 산성이 있는데,

     

    유사시 국왕과 백성이 피난처로 이용했으리라 짐작된다.

     

    국내성의 축조방법은 조선 후기까지 우리나라 성곽의 주류로서 계승되었다.

     

     

     

    국내성 성벽 ( 불친 불로그에서 빌려왔슴 ~ )

     

     

    다시 울쩍한 기분이 되어서 집안시내를 빠저 나오니 시골풍경이 그려진다.

     

    강 건너 저편은 북한땅이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    자유가 없는 곳이다.

     

    계속해서 차량 이동중에 차장밖 풍경이다. 이곳에도 유람선이 있는것 같다.

     

    다시 끝없는 길을 가는 느낌으로 시골길을 달려간다.

     

    백두산 탐방 ~    우리팀의 일정은 많은 인내가 요구되는 코스이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이 다리 ~

    얼마전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이곳에서 사고를 당했던 장소라고 한다.

     

    관광버스 차량간의 속도 경쟁으로 부른 참사였다고 알고 있다.

     

    이 강을 건너면서 단동지역으로 들어선다.

     

    진행길에는 이런 인삼밭이 많았다.  그런데 장뇌삼으로 둔갑한다고 . . . .

     

     

    산 고개를 넘고 넘어 힘 들게 도착, 차창밖으로 수풍댐 유역에 있는 복숭아섬이 보인다.

    복숭아 꽃이 필 무렵이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이곳에서 압록강 유람선 관광을 즐긴다고 한다.

    가운데 출입구를 들어서면 압록강 유람선을 타는곳이다.

     

     힘들게 왔으니 한번 타볼까 ~

     

    타기전에 찰깍하고 . . . .

     

    유람선에 승선하여 건너편을 바라보니 북한땅은 벌거숭이 ~

     

    너무 심한것 같다.

     

    이곳에도 끊어진 단교가 있다.

     

    압록강에는 끊어진 단교가 세곳에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첫날 단동시내에서 보았던 압록강단교 이고 . . . .

     

    두번째는 이곳이다.

     

    그리고 또 한곳이 있는데, 그곳은 물이 빠지면 볼수있고 물이 차면 볼수없는곳 이라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이웃사촌과 대화갈비 사장은 친한사이 ~

     

    유람선이 서서히 북한쪽으로 접근한다.

     

    당겨보면 이런 모습이고 . . . .

     

    북한병사가 빨래를 하는건지?  투망을 치는건지 ?

     

    아니면 목욕하고 옷 갈아 입는거 ~~~ ?

     

    군 막사 같은 건물 옆에는 무얼 태우는것 같고 . . . .

     

    유람선은 이렇게 근접하기도 한다.

     

    소를 몰고 있는 농부인가 ?

     

    당겨보았더니 이런 모습이다.

     

    끊어진 단교 아래로 통과한다.

     

     위에는 북한군 초소 ~

     

    다리를 통과하니 북한군 병사가 이쪽을 바라보더니 . . . .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강변에 있는 주민을 당겼더니 아주머니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소녀와 빨래를 하는것 같다.

     

    가운데 멀리에 다리가 보이고 좌,우즉은 군부대 인것 같다.

     

    당겨 보았다. 그랬더니 벌거숭이 밭이 . . . .

     

    가까이는 군부대, 뒷편은 주택가 인것 같고 . . . .

     

    이렇게 바라보면 평화로워 보이는데 . . . .

     

    속 사정은 알수가 없고 . . . .

     

    가뭄으로 밭에는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담았다가 . . . .

     

    당겼다 를 반복한다.

     

    4박5일 일정의 4일째 일정이 진행중이다.

     

      어느정도 피로가 누적되어 간다.

     

    오히려 아줌씨들이 더 씽씽 ~

     

    저만치 강건너에 북한군 초소가 나타난다.

     

    이 놈은 우리들이 손을 흔들어도 가만히 바라만 보네 ~

     

    강가에 두사람이 앉아있다. 그리고 밭에는 아낙들이 일을 하는것 같다.

     

    당겨보았다. 한 사람이 더 강가로 다가온다.

     

    우리가 타고 지나가는 유람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중에 도착한 사람이 담배를 빼어 문다. 손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먼저 있던 사람들은 자루에 뭔가 담겨있는데, 나중에 온 사람의 자루는 빈 자루이다.

     

    그 뒤편에 주민들이 밭에서 일을 하고있다.

     

    뭐 ~  대단한 일을 하는것 같지도 않은데, 때거리로 있는게 북한의 집단농장인가 ?

     

    그리고 왼쪽으로 시야를 이동하여 당겨보았더니 옥수수 밭가에 어린이 네명이 . . . .

     

    흰색 칠을 한 경계석 같은 곳으로 . . . .

     

    올라선다. 한 아이는 땅에 주저앉아 있고 . . . .

     

    우리측을 바라본다.

     

    우리가 손을 흔들어주니, 어린이들도 답해준다. 어린이는 어린이다.

     

    멀리에 농가처럼 보인다.

     

    당겨보았더니, 농가가 확실한것 같다.

     

    더,당겼더니 강가에 염소가 보이고 어린 소녀가 보인다.

     

    조금 더 당겼더니, 북한여군 같기도 하고 . . . .

     

    더 당겼다. 내가 보기에는 힘없어 보이는 여군이다.

     

    유람선은 계속해서 이동중이고 . . . .  멀리에 주민이 배쪽으로 다가가기에 당겨본다.

     

    자세히 보니 나이를 잡수신 아주머니인지 ?  할머니 인지 ?   배에서 물을 퍼 낸다.

     

    그리고 우리편에서 손을 흔드니, 대답이 온다.

     

    유람선은 계속 상류쪽으로 이동중 ~     수풀사이로 뭐가 보이는것 같다.

     

    당겹보았더니, 숲속에서 북한군 병사가 탈북자를 감시를 하고 있는것이 아닐런지 ~~~

     

    멀리서 바라보면 평화로워 보이지만 ~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등 뒤로 시야를 돌리면 ~

     

    중국 땅 ~

     

    하루해가 넘어가고 있다. 이곳에는 어느정도의 자유와 평화가 보장되는 곳인데 . . . .

     

    유람선은 이곳에서 서서히 왼쪽으로 회전하면서 반환점을 돈다.

     

    반환지점에서 상류쪽을 당겨보니, 저 곳에도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북한지역은 민둥산이 그대로 들어나 보이는게 서글픈 생각이 든다.

     

    왼쪽으로 중국땅은 이런데 . . . .

     

    당겨보았다. 눈으로 보아도 풍요가 느껴지는데 . . . .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북한쪽은 ~

     

    이렇다. 궁핍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것같다.

     

    북한쪽은 이제, 그만보고 중국쪽을 봐야겠다.

     

    북한쪽을 자꾸 바라보니 왠지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   이렇게 중국땅은 힘이 있다.

     

     

     

    허접하지만 동영상을 올려본다. 동영상 - 1 

     

     

    동영상 - 2 

     

     

     동영상 - 3

     

     

     동영상 - 4

     

     

    아랫층으로 내려와서 이웃사촌 부부와 아내 ~

     

    함께 했던 일행들이 햇갈려 하는것 같다. ㅎㅎ~~~

    여행내내 우리 두집이 붙어 다니는데, 누구와 누구가 부부 사이인지 ?  모르겠다고 물어온다.

    장난으로 반대로 대답해 주니까, 정말로 믿는 사람들도 있다. 어째든 일행들과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 생전 처음으로 온 압록강 ~   유람선상의 강물위에 석양이 내려앉는다.

     

    어둠도 조금씩 . . . .

     

    아쉽다.

     

    오성기가 아니고, 한반도 기가 펄럭였다면 ~   이런 생각을 잠깐 해봤다.

     

    유람선은 이렇게 어둠이 내리는 선착장으로 . . . .

     

    아쉬움과 씁쓸함을 싣고서 들어간다.

     

    유람선에서 내려서 오른쪽 정자 뒤로 단교가 보이고 . . . .

     

    그 너머로 북녁땅 ~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지금보다 훨씬 좋은 날이 올것을 기대해보며 . . . .

     

    저녁식사를 위해 강변 2층식당으로 올라선다.

     

    이렇게 식사를 하면서도 . . . .

     

    눈은 자꾸만 강건너로 가고,  저편에는 하루 세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 . . .

     

    저녁식사후, 다시 단동으로 갈 준비를 하면서 찰깍해본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북녁땅은 힘들다는것이 전해오는 시간이었다.

     

    우리를 실은 차량은 달리고 달려, 단동시내로 들어선다.

     

    위화도는 어두워서 뵈이지 않았고 . . . .

     

    버스가 멈춰선 곳은 4박5일간의 여정에서 마지막 잠자리인 압록강 호텔이다.

     

    오늘 일정에서 느낀점은 중국측의 무성의로 관리가 허술해 너무 많이 훼손되어 있는 광개토대왕릉과 그들의 동북공정 정책으로

    우리의 고구려역사를 빼앗기고 있다는것도 가슴 아팠고,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고서 북녁땅을 바라보는 느낌도 많이 씁쓸하였던 하루였다.

    ( 내일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 일정으로 단동에서 대련으로 돌아가서 대한항공편으로 인천공항으로 가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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