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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 한가위 추석 명절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연휴는 9월26일부터 10월6일까지 11일간이다.
기나긴 연휴기간에서 추석 전날까지는 밭에나가 고구마를 캐고, 고추밭을 정리한다.
추석 당일날은 코로나19 때문에 문경,점촌형님댁의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아침식사후에 앞동에 거주하는 딸냄이 식구들과 청풍문화재단지로 놀러를 왔다.
집을 나와 청풍문화재단지로 가면서 금성면 소재지을 지나며 벗나무 가로수에 걸려있는거 ~
집을 나선지 25분 경과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위치하는 청풍문화재단지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입구로 올라선다.
출입구 누각에는 팔영루 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 . . .
매표소 - 1인당 3.000원이다.
문지기 이 놈은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네 ~
입구를 들어서면 발열감지기가 . . . .
입구를 지나, 올라선다.
오른쪽으로 올라, 왼쪽으로 내려올거다.
위, 이미지 갈림길에 있는 안내판이다.
연자방아 - 실제로 곡식을 찧는것을 본적은 없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 제천 도화리 고가를 옮겨온것 이다.
도화리 고가에 들어서니 화단에는 꽃들이 만발했다.
부엌에 있는 것들이다.
도화리 고가, 장독대 담장너머로 황석리 고가이다.
도화리 고가를 나와, 바로 옆에 있는 후산리 고가를 들어선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 - 제천 후산리 고가이다.
아내가 딸과 사위에게 이것저것을 설명해준다.
후산리 고가, 뒤안으로 이동해본다. 오래전 추억의 탈곡기가 있고 . . . .
구절초와 흙담에 용마루 이엉을 이어 놓았다.
고가를 둘러보고, 쉼터로 이동한다.
위, 이미지 쉼터에서 내려보는 청풍호반이다.
호반건너로 외솔봉,작은동산,성봉,동산이고 가운데 멀리는 작성산이다.
쉼터에서 휴식후, 고인돌과 비석들이 즐비한 석물군으로 가면서 이런게 있네 ~
거대한 청풍명월 표석 앞에는 비석들이 도열해있다.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하지만 선정비,공덕비였던거로 기억된다.
가까이 앞쪽으로 납작한 돌은 고인돌이다.
우리손녀 서이에게 할머니가 개미를 가리켜주자 ~
약간은 겁 먹은 표정을 짖더니 . . . .
잠시후, 바로 적응이 된다. ㅎㅎ
우리서이, 우리딸, 우리아내 - 3대가 이렇게 . . . .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잠이, 덜 ~ 깨였나 ?
컨디션이 별로인것 같다.
돌 전부터 걷기 시작하던 발걸음이 . . . .
이제는 제법, 안정적이다.
할아버지가 우리서이, 사랑한다. ㅎㅎ
할머니 손을 잡고 . . . .
아장아장 걸어서 ~
한벽루 앞으로 이동해 왔다.
한벽루 앞에서 돌아보는 청풍대교이다.
보물 제528호 - 제천 청풍 한벽루이다.
제천 청풍 한벽루는 청풍 관아에 딸린 건물로, 고려 충숙왕4년에 청풍현 출신 승려 청공이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되면서 청풍현이 청풍군으로 승격된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누각이다.
본채 옆에 작은 부속채가 딸려있는 형태로 밀양 영남루(보물제147호)
남원의 광한루(보물제281호) 와 함께 조선시대 누각 건축양식을 잘보여주는 건물로 꼽힌다.
한벽루에서 보는 경치가 매우 빼어나서 조선시대의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한벽루를 주제로
한시와 그림들은 여러편 남겼다. 1972년 8월에 대홍수로 건물이 무너지고 현판들도 모두 떠내려가
1975년에 본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원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을 만들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이곳으로 옮겼고, 송시열이 쓴 현판은 사진을 보고 다시 만들었다.
한벽루 누각 기둥아래의 그늘에서 할머니와 휴식중인 우리서이 ~
이제는 끼가 말짱하다. ㅎㅎ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래 ~ ♥
한벽루 편액이다.
한벽루에서 오른쪽 저만치에는 포토존이다.
딸과 사위를 뒤돌아보라고 해서 . . . .
포토존에서 호반 건너, 교리 관광단지 전경이다.
작성산, 동산, 작은동산 능선위로 흰구름이 두둥실 ~
포토존에서 조망 - 오른쪽으로 가까이는 청풍대교,
가운데 멀리는 조가리봉,미인봉,학봉,신선봉 능선이고 오른쪽 멀리는 금수산이다.
위, 3개의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합성하면 이렇게 된다.
한벽루 뒤편의 나무벤치로 이동했다.
할머니 껌딱지 - 우리서이, ㅎㅎ
지금시각 12시30분, 청풍호반의 수경분수가 올라간다.
이게, 처음으로 만들어질 당시에
높이가 동양에서 첫번째라고 했던가 ? 네번째라고 했던가 ? 라고 했던 기억이다.
우리서이는 엄마 아빠가 없어도 할머니랑 ~ 잘 논다.
추석날 이어선지 ? 가족 팀, 관람객이 많이 있는 편이다.
위, 이미지의 망원경으로 가운데 부근을 당겨보았더니 . . . .
가운데 봉긋산 지점이 감악산 이다.
위, 이미지와 같은 장소에서 바라보는 왼쪽 가까이는 관수정, 오른쪽 멀리는 망월루이다.
소나무 위로 뭉게구름이 . . . .
나무벤치에서 휴식후, 응청각 앞으로 이동해왔다.
응청각 - 조선시대 관아의 건물로 손님이 머물던 곳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 금병헌은 조선숙종7년에 청풍부사 오도일이 지은 관청으로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관아의 중심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명월정이었으나, 영조2년에
청풍부사 박필문이 다시 지으면서 금병헌으로 바꾸었다. 죄인을 가두었던 감옥인 부속건물은
조선말기에 없어졌고 충주댐을 만들면서 198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망월루까지 갔다가 와야 하는데 . . . . 딸이 그냥, 나가자고 하네 ~
금남루 ~
금남루를 나간다.
금남루를 지나, 오른쪽 조망 -
왼쪽으로 청풍운동장과 케이블카 승강장이고, 오른쪽은 케이블카 도착지점 비봉산 정상이다.
위, 이미지 오른쪽 비봉산 정상 케이블카 도착지점이다. - 구형스마트 폰의 한계가 느껴진다.
지나온 방향을 돌아본다.
석조여래입상 앞에 도착한다.
어디, 한번 볼까 ~
제천 청풍물태리 석조여래입상 안내판이다.
보물 제546호 - 석조여래입상이란 돌로 만든 서있는 불상을 말한다.
제천물태리 석조입상은 긴 기둥모양의 거대한 불상으로 통일신라 불상과 비슷한
당당한 느낌의 어깨와 목의 형식화된 주름, 사실적이지 않은 손 등에서
고려초인 10세기 무렵작품의 특징이 드러난다. 연꽃이 새겨진 8각의 대좌위에 부처의 발을
조각하였는데,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과 기법이 비슷하다. 본래 청풍면 읍리에 있었는데
충주댐을 만들면서 물에 잠기자 1985년에 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왔다. (대좌:불상을 올려놓은 대)
♡ ~ 소나무 라고 한다.
딸, 서이와 사위 ~
즈그 할매하고는 장난이 심하다. ㅎㅎ
우리집에 오면 ~ 즈그집에 갈때, 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난리다.
적당하게 둘러보고 청풍문화재단지를 나간다.
우리 아들, 딸 초딩 저학년때 오고, 처음으로 왔던거다.
청풍문화재단지를 나와, 성내리 황금가든 송어집으로 왔다.
아내와 딸, 사위에게 소주를 마시라고 하고 나는 사이다 한병으로 때웠다.
귀가길에 사위 차를 내가 끌고 왔는데, 벤츠는 역시, 돈 값을 하는 놈이라고 여겨진다.
이놈 ! 우리집에 오면 이렇게 남아 나는게 하나도 없다.
화분도 다 ~ 치워 놓고, 깨지는 것은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잠시후, 왼쪽 화분도 엉망이 되었다. ㅎㅎ
다음날인 10월2일에는 문경, 처가집에 다녀왔다.
장인어른 생신날이었는데, 코로나로 아침일찍이 갔다가 처남들 만나보고
내가 농사지은 이것저것들 나눠주고, 둘째와 세째처남이 대구로 출발하는것을 배웅하고
우리부부와 장인,장모님과 넷이서 점심을 먹고 일찌감치 제천으로 귀가하였다.
10월3일, 간밤에 단비가 내렸다. 오전까지 부슬부슬 내렸는데 . . . . 조금 더 내렸으면 좋았을것을 ~
10월4일,심심해서 음식물쓰레기 버리려고 밭에 나왔는데, 김장배추와 알타리용으로 늦게심은 조선무우가 반겨준다.
김장배추용으로 120포기 심었는데, 잘 자라고 있다.
살충제,영양제,칼슘제를 수시로 살포해서인지 벌레도 없다.
이제, 벌레가 먹더라도 약을 그만 처야겠다. ㅎㅎ
내일은 월요일 ~
화요일까지 쉬고, 수요일은 출근해야한다.
내일과 모래, 이틀은 우리지역의 나즈막한 산이나 올라볼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