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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화성 & 화성행궁
    쉬는시간 /소풍&여행&기타 2019. 12. 31. 11:57







    2019년 12월 30일, 월요일 ~


    수원에 있는 수원화성 & 화성행궁을 둘러보았다.




    "수원화성" 은 조선시대의 개혁군주 정조대왕의 꿈이 담긴 성곽으로 우리나라 성곽 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면모를 자랑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축조상황을 기록한 세계기록유산 "화성성역의 궤" 에 의거하여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였으며  1997년에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게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원화성은 수원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곽길이는 약 5.7 Km 로 성곽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수원화성을 멋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효심과 애민정신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의 숨결을 따라 성곽을 천천히 걸으면서, 토목건축의 백미를 보여준

     정약용의 빼언산 과학성에 집중해봐도 좋을것이다. 걷는 것만으로도 누부신 에술성과 아름다운 경관을 만끽할수 있는곳, 어느지점에서 시작해도 무관하다.



    화성행궁  홍살문 ~


    정조 초상화 ~


    오전 09시05분, 수원으로 가는 누리로 열차에 올랐다.


    11시54분, 수원역앞 광장으로 내려선다.


    수원역 광장에서 왼쪽, 노보텔앰버서더 방향으로 . . . .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왔다.


    우리부부가 가려는 목적지, 팔달문을 가려면 이곳에서 11번,13번 버스를 타야한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건너편 풍경이다.


    12시04분, 13번 버스에 승차한다.


    4곳의 버스정류장을 경유하여. 팔달문 정류장에 내렸다.

    "팔달문(보물제402호)" - 수원화성의 4대문중 남쪽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1794년2월28일에 공사를 시작, 9월15일에 완공되었다. 팔달문은 모든곳으로 통한다는 뜻이며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느 역활을 한다.


    지금시각이 12시20분 ~ 


    국수를 한그릇 먹고 시작할거다.


    수원화성 개념도 이다.


    팔달문 근처의 영동시장 입구에서 오늘 발걸음이 시작된다. (12:50)


    수원화성 둘레길을 실제로 진행한 발걸음 트랙이다. 두시간 소요 ~


    팔달문 시작지점에서 진행방향이다.


    영동시장에서 지동교를 건너면 지동시장이다.


    지동교를 건너며 왼쪽으로 수원천 & 남수문이다.


    지동교를 건너, 왼쪽으로 남수문 부근으로 이동하여 진행방향 성곽길을 올려본다.


    부근에 있는 안내판 이다.


    클릭하면 커짐 ~


    클릭하면 커짐 ~


    남수문 ~


    남수문 성곽길로 올라선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수원화성 트레킹 발걸음이 시작되는 거다.


    위, 이미지 돌계단 위의 동남각루에 올랐다.

    "각루" 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수 있는 건물이다.


    동남각루에서 진행방향 이다.


    동삼치 도착이다.  "치" 란 -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쪽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에 가까이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곳으로 수원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진행방향 왼쪽으로 수원화성 둘레길 안쪽의 시가지 이다.


    위, 이미지 오른쪽 산 능선에 있는 서장대를 당겨보았다. 한참후에 저곳을 오를거다.


    진행길에 공사중 ~


    수원화성 동2포루 공사현장이다.


    이렇게, 복원이 된다는 거다.


    진행길 ~


    봉돈, 도착이다.


    위, 이미지의 봉돈 안내판 이다.


    진행길에 이건, 경계석인가 ?  八達衛中部尾局 (팔달위중부미국) 이라고 씌였다.


    진행길에 오른쪽 방향 성곽 밖으로 풍경이다.


    빗 방울이 떨어진다.


    동포루 도착이다.  "동포루" 는 화성의 5개포루 중에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며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위해 성벽의 일부를 바깥쪽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화포를 쏠수있는 시설물이다.


    진행길 ~


    동일포루 도착이다.


    진행길 왼쪽으로는 공사중 ~


    진행길 ~


    창룡문 도착이다.   "창룡문" 은 화성의 동문으로 규모와 형식이 화서문과 비슷하다.

    주목할 것은 성문 왼쪽 벽에 있는 실명판이다. 화강석 벽을 다듬어서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팔달문, 화서문, 장안문의 실명판이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데 반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창룡문 누각 안에서 ~


    창룡문 누각에서 가운데로 잠시후에 도착하게 될, 동장대 조망이다.


    누각에서 창룡문 정면앞으로 내려섰다.


    누각 아래에서 동장대 조망이다.


    성곽길로 올라와서, 진행길 가까이에 동북노대 이다.

    "노대" 는 성 가운데에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것은로 화성에서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두곳이 있다.


    동북공심돈 이다.

    "공심돈" 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이다.


    진행길에 지나온 방향을 돌아보는 그림이다. 가까이 가운데에 창룡문 이다.


    진행방향 이다.


    동장대가 가까워 진다.


    순시 라고 씌여진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동장대" -  장대란 성곽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 이다.


    수문규칙 - 군사들이 지켜야할 사항들이 유리벽 넘어에 족자 되어 있다.

     1, 장수의 명령을 따른지 않는 자는 처벌한다.

    2, 밤에 돌아다니거나 군호를 잃은 자는  처벌한다.

    3. 직무에 불평하는 자는 처벌한다.  4, 부녀자를 데려 들어오는 자는 처벌한다.

    5, 헛된 말을 하여 혹하게 하거나 까닭없이 군을 놀라게 하는 자는 처벌한다.

    계축 6월초1일, 수원유수 채제공 이라 적혀있다.


    진행길 이정표 ~


    클릭하면 커지는 수원 관광안내도 ~


    동장대를 지나, 동암문 이다.

    "암문" 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못하게 만든 출입구 이다.


    진행길 - 동북포루 이다.


    진행방향 - 북암문, 수원방화수류정(동북각루) 이다.


    북암문 이다.


    북암운을 들어서면 이런, 연못정원 - 용연이다.


    방화수류정 이다.


    방화수류정 (보물,제1709호) - 1794년(정조18년) 10월19일에 완공 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 기능을 가지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 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는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이다.

    이곳 방화수류정은 수원 화성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다른 성곽에서 볼수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방화수류정 누각에 올라, 인공연못 용연을 내려본다.


    방화수류정 돌 층계에서 지나온 방향을 돌아본다.


    방화수류정에서 내려와, 진행방향으로 북수문이다.


    북수문 -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두개의 수문이 있다.

    북수문은 1794년2월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1월13일에 완공되었다. 별칭으로 화홍문으로 불리운다.


    북수문 앞에서 내려보는 수원천 이다.


    진행길에 돌아보는 가까이는 북수문 이고, 조금 멀리는 방화수류정 이다.


    진행길 이다.


    북동포루를 지난다. 화성의 5개 포루중에 화홍문과 장안문 사이에 위치하는 포루이다.


    진행방향 - 저만치에 장안문이다.


    뒤 따르는 아내 ~


    장안문이 가까워진다.


    장안문 직전에 오른쪽으로는 북동치 이고, 왼쪽은 북동적대 이다.


    북동적대에는 홍이포가 전시되어 있다.

    홍이포 -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때까지 사용했던 유럽식 화포이다.

    사정거리가 약 700 m 에 달하는 위력을 가지며 성곽,포루등에 배치하여 공격용으로 사용하였다.


    북동적대에서 건너보는 장안문이다. 장안문 바깥쪽으로 옹성이 이중으로 축조되어 있다.


    북동적대에서 지나온 방향을 돌아본다.


    북동적대 앞에서 바라보는 장안문 누각 측면 형상이다.


    장안문 바깥쪽 옹성 누각으로 이동하여, 바라보는 장안문 누각 정면 형상이다.


    장안문 옹성 누각에서 바깥쪽, 영화동 방향 풍경이다.


    장안문 누각 내부 - 웅장하게 느껴진다.


    장안문 서쪽에는 북동적대와 똑같은 북서적대 이다.


    장안문 성루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장안문" 은 화성의 4대문중 북쪽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이다.

    1794년2월28일 공사를시작하여 9월5일에 완공되었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며,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한다. 성문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아 성문을 보호하는 역활을 하였다.


    장안문 성문에서 바깥쪽 옹성의 성문을 바라본다.


    이번에는 위, 이미지의 옹성 성문에서 웅장한 자태의 장안문을 바라본다.


    장안문 성문의 천정에는 용형상의 ~  이런걸 뭐라고 하나 ?  


    장안문 부근의 매표소 이다.


    매표소 옆에 안내판 - 클릭하면 커짐


    장안문에서 진행방향 북서포루 이다.


    진행길 - 북포루 직전에 이것은 ~


    경계석으로 짐작되는거 ~  長安衛前部頭局 (장안위전부두국) 이다.


    진행방향으로 저만치에 화서문 이다.


    웅장한 규모의 화서문 직전에 위치하는 것은 서북공심돈 이다.


    화서문 앞으로 내려선다.


    수원 화서문 이다.


    화서문(보물,제403호) - 화성의 4대문중 서쪽대문이다. 1795년7월21일 공사를 시작하여,1796년1월8일에 완공되었다.

    화성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활을 하였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화서문의 규모가 대단하다.


    성문 천정벽면에는 용 형상의 그림이 . . . .


    오른쪽은 보물, 제1710호 - 수원 서북공심돈 이다.


    화서문에서 진행방향은 오름길이다.


    앞서가는 아내가 뒤돌아보며, 허구한 날을 두고 비가 오는날 왔다고 투덜거린다.


    이럴때는 가만히 있는게 정답이다. 지갑에서 5만원권을 꺼내 ~

    아내에게 주면서 발걸음을 끝내고, 통닭집에 가자고하니 금새 표정이 밝아진다.


    서북각루를 지난다.


    진행길 ~


    서일치를 지난다.


    계속되는 오름길이다.


    서포루를 지난다.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에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한다.


    서장대로 올라간다.


    오름길에 이정표 ~


    오름이 끝나는 지점에 왼쪽은 서장대 이고, 오른쪽은 서노대 이다.


    서장대 ~


    서노대 - 화성에는 동노대와 서노대 두곳이 있다.


    서장대 - 화성에는 군사들의 지휘소, 동장대와 서장대, 두곳의 장대가 있으며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다.


    서장대에서 내려보는 팔달문 방향의 조망이다. 오리무중  ~


    비 안개속에서 어렵게 팔달문을 찾았다.


    서장대 앞에서 아내 인증샷이다.


    서장대에서 진행하며 뒤돌아보는 그림이다.


    진행길 서암문 이다.


    매표소 도착 ~


    1인당, 1.000원 ~


    2.000원을 지불하니까, 이런걸 준다.


    매표소 옆에는 효원의 종각 이다.


    일정액을 지불하면 타종을 할수 있다고 . . . .


    클릭하면 커지는 타종 안내판 이다.


    이런 안내석도 있었다.


    진행길에 서포루 이다.


    진행길에 세계문화유산 화성 표시석이다.


    찰깍하고 간다.


    나도, 찰깍이다.


    다시, 진행이다.


    진행길에 오른쪽으로 이런 암문 밖에는 ~

     


    관광안내소 + 진달래 화장실 이다.


    진행길 오른쪽으로 서삼치를 지난다.


    진행길 왼쪽으로 이건, 뭐여 ?


    3.1 독립운동 기념탑 이었다.


    서남암문 & 서남포사, 도착이다.


    서남암문 & 서남포사 안내판 ~


    진행길 이다.


    용도동치를 지난다.


    용도서치를 지난다.


    막다른 길에 도착한다.


    그 끝에는 ~  서남각루 이다.


    되돌아 나간다.


    서남암문으로 돌아나와, 왼쪽으로 내려선다.


    내려간다.


    흙길에서 성곽길로 올라섰다.


    남포루를 지나친다.


    내림길 가운데 멀리에 시작지점, 팔달문이 가늠된다.


    내림길 돌계단 왼쪽으로 . . . .


    당겨보니, 고향의 봄 노래비 이다.


    내림길 이다.


    당겨보는 팔달문 이다.


    남치를 지난다.


    이제, 수원화성 둘레길 종료지점이 다가온다.


    종료지점이다.


    종료지점의 매표소 ~


    종료지점에서 돌아보는 조금전에 내려온 팔달산 이다.


    팔달문으로 돌아왔다.


    팔달문 로타리, 보도에 설치되어 있는 거 ~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 오래도록, 소중하게 보존되었으면 한다.


    팔달문에서 화성행궁으로 간다.


    위, 이미지의 도로표지판 이다.


    진행길 오른쪽에는 종각이 있네 ~


    당겨본다. 신년새해 타종 행사가 예정되어 있는것 같다.


    종각 현판에는 與民閣 (여민각) 이라 씌여있다.


    거대한 성탄절 추리도 광장 가운데에 자리하고 . . . .


    화성행궁 입구로 간다.


    위, 이미지의 팔달산 정상에 자리하는 서장대를 당겨본다.


    화성행궁 홍살문 이다.


    매표소 - 1인당, 1.500원 이다.


    통합권은 3.500원 이고 ~


    화성행궁 -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은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 의 묘소를 현륭원(현재의 융릉)으로 옮기면서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화성행궁을 건립했다. 화성행궁은 화성 안에 위치하며,

    조선 행궁중에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평상시에는 수원관아로 사용되다가 정조대왕 행차시에는

     화성행궁에서 머무르며, 진찬연 및 과거시험 등 여러행사를 거행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정책으로 사라졌으며, 1996년 1단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03년10월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현재도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최근에는 한류의 중심지로 영화와 드리마에서도 화성행궁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클릭하면 커지는 화성행궁 전각배치도 ~


     신풍루 아래로 들어간다.


    신풍루 편액 -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신풍이란 ~

     "임금의 새로운 고향" 이란 뜻으로 정종대왕이 수원을 고향처럼 여긴다는 의미이다.


    신풍루 입구 오른편에는 화성행궁 네 글짜가 커다랗게 족자되어 있다.


    위, 이미지 화성행궁 족자, 오른쪽 옆에는 또 화성행궁 이라고 . . . .


    그리고, 안내석이 함께 한다.


    신풍루를 들어서면 오른쪽에 화성행궁 관광안내소 이다.


    좌,우측에 군영을 상징하는 깃발을 배경으로 찰깍해본다.


    진행방향 왼쪽으로 이런 형상이 . . . .


    나도, 찰깍해 본다.


    돌아보는 신풍루 + 군영을 상징하는 깃발 이다.


    진행방향으로 좌익문 이다.


    좌익문 오른쪽으로 이런 민속놀이 ~


    이곳에도 스탬프를 찍는게 있네 ~


    좌익문을 통과하면 중앙문이다.


    중앙문을 지나면 봉수당 이다.


    봉수당 앞에서 찰깍해본다.


    나도, 찰깍 ~


    봉수당 은 - 임금 행차시 정전으로 쓰인 건물이다.

    화성행궁의 정당으로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진찬연)을 열었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된것을 1997년에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건물 이름은 "萬年의 壽를 받들어 빈다"

    라는 뜻으로 정조대왕이 혜경궁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지었으며, 돈령부지사 조윤형이 편액을 썼다.


    봉수당 어전 + 오봉 일월도 ~


    봉수당에서 진찬연 - 1795년 을묘원행시 진찬연 장면을 부분연출, 정조가 헤경궁홍씨에게 예를 올린다.


    화성행궁 행차시 정조대왕의 처소이다.

    원래는 유여택에 있는거지만, 관람의 편의를 위해 봉수당에 연출했다.


    득중정 - 활을 쏘는 정자이다. 편액을 정조가 직접 써서 걸었다.


    낙남헌 (경기도 기념물,제65호) - 각종행사를 할수있는 행사용 건물로 일제강점기에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화령전 (사적,제115호) 으로 간다.

    화령전 은 정조의 초상화를 모신 건물로 정조대왕 승하, 이듬해인 1801년(순조원년) 에 세워졌다.

    한분의 임금을 위해 별도의 영전을 짓는 것은 조선시대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지방도시에

    세우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로 화령전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정조의 초상화를 모시는 운한각이다.

    만약에 운한각을 수리하거나 잠시동안 어진을 옮겨야 할때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건물이 이안청 이다.

    운한각과 이안청는 복도각으로 연결되며 운한각,이안청,복도각으로 구성된 국내유일의 영전 건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외삼문을 들어선다.


    외삼문을 들어와 왼쪽,전사청 앞 담장이다.


    전사청 마루에서 ~


    전사청 안쪽으로는 제정 이라는 우물이 있다.


    제정 - 화령전의 제례때 사용될 정화수를 뜨는 우물로 어정 이라고 한다.


    전사청를 한바퀴 돌아 왼쪽으로 내삼문을 통과 ~


    운한각으로 왔다.


    운한각은 ~


    보물, 제2035호 ~


    운한각 편액 ~


    운한각은 화령전의 정전으로  ~


    정조대왕의 어진이 모셔져 있다.


    우리역사에 훌륭하신 분 이시다.


    운한각을 등지고, 왼쪽으로 내삼문을 들어서면 ~


    풍화당 이다.


    풍화당은 재실로서 재향이 있을때 재물을 올리는 사람이 미리 와서 머무는 건물이다.


    화령전에서 돌아나오면서 ~


    임시로 만들어진 벽면에는 이런 그림이 전시, 부착되어 있다.


    노래당으로 들어간다.


    노래당 - 정조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생활을 꿈꾸며 지은 건물이다.


    경룡관 - 혜경궁홍씨의 처소인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누문 이다.


    장락당 - 혜경궁홍씨의 처소이다.


    침소에 들기전의 혜경궁홍씨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1795년 헤경궁홍씨의 진찬연 (회갑연) 상차림을 재현해 놓았다.


    장락당과 봉수당 뒤편에 위치한 행각에는 환관이 채비를 하는 모습도 재현되어 있다.


    다복문을 들어간다.


    복내당 - 화성행궁의 내당이다. 평상시에는 화성유수들의 가족들이 거처하였다.


    복내당에 재현되어 있는 거 ~


    임금의 수라상을 만드는 수랏간이다.


    이곳에서 드라마를 촬영했던것 같다.


    유여택으로 왔다.


    유여택 - 평상시는 화성유수가 거처하는 곳으로 쓰이다가,

    임금이 행차하게되면 신하를 접견하는 장소로 쓰였던 건물이다.


    유어택 내부, 어전에는 장남헌 편액이 걸려있다.


    유여택 앞 마당에 있는 해시계 - 앙부일구 이다.


    뒤주 - 곡식을 담아 보관하는 용기이다.


    외정리소 - 왕이 화성행궁으로 행차시에 행사를 담당하는 곳이다.


    정리사가 행사준비를 위해 기물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장면을 연출해 놓았다.


    외정리소,기층헌 이다.


    기층헌 편액이다.


    기층헌 내부의 악기 ~


    궁중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악기들인데, 거의가 타악기 이다.


    북 ~


    종 ~


    비장청 - 조선시대 감사,유수,병사,수사등을 따라다니는 관원을 비장이라 하는데, 이곳은 비장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서리청 - 서리는 문서를 기록 및 수령, 발급하는 아전으로 서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남군영 -


    "화성성역의 궤" 에는 공해(관아) 건물로 분류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2002년 7월에 복원된 것이다.

    장용외영의 친군위 (화성의 기병) 는  처음 좌,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곳이 남,북군영이다.

    1789년 (정도13년) 에 군영 24칸을 지은 후에 정조18년에 좌,우익랑 21칸을 증축하여, 모두 62칸의 규모를 갖추웠다.


    클릭하면 커지는 이미지 ~


    이렇게, 화성행궁을 40여분 둘러보고 . . . .


    화성행궁 광장 앞으로 나왔다.


    입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멋스럽고 . . . .

    아내와 함께한 수원화성 둘레길 트레킹과 화성행궁 탐방 발걸음은 종료된다.


    계획되었던 일정이 모두 종료되었고,

     팔달구 정조로 800번길 일대의 수원통닭거리로 이동해왔다.


    이곳으로 들어간다. 아내와 약속한 수원통닭을 즐기는 시간이다.


    하루종일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에 함께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참이슬을 즐긴다.


    통닭집을 나와, 수원천변 남수문 이다.


    남수문에서 수원천변 풍경이다. 가운데 살색 건물은 수원사, 사찰이다.


    지동교 부근의 지동시장으로 왔다.


    아내가 1월1일 아침에 끓여먹을 떡꾹꺼리를 사고 있다. 또 한해가 저물어간다.


    여기는 수원시 팔달구 지동시장, 순대타운 이다.


    지동시장 입구에서 지동교를 건너면 영동시장 ~


    영동시장으로 진입하면서 오른쪽 한켠에는 불취무귀 ~

    정조는 화성축성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회식자리에서 "不醉無歸" 라고 하였다.

    즉,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불취무귀" 란 말은 실제 취해서 돌아가라고 한말이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뻑 취할수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의미다.


    다시, 돌아온 팔달문이다.


    저만치 팔달문 버스정류장에 수원역으로 가는 13번 버스가 왔다.

    지금시각이 17시20분,  18시30분에 출발하는 제천행 열차시간이 여유가 있다.

    바쁠것도 없다. 우리부부 운동삼아 이곳 팔달문에서 수원역까지 걸어서 가기로 합의한다.


    팔달문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근처의 상가에서 나는 장갑,아내는 덧 버선을 구매한다.


    수원역으로 도보 이동하면서, 어느 교차로에서 이쁘게 꾸며놓은 것을 배경으로 . . . .


    2020년, 새해에도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것은 가족건강 ~

    2019년 우리가정에서 가장 기쁜 일은 외손녀 "서이" 가 우리 품으로 왔다는 것이다.


    팔달문에서 도보로 25분 소요. 수원역 도착이다.

    2019년 마지막 일정으로 아내와 함께한 수원화성 + 화성행궁 둘러보기가 무사하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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