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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희양산봉암사 ~
    쉬는시간 /소풍&여행&기타 2016. 5. 15. 09:58

     

     

     

     

     

     

    불기, 2560년 부처님 오신날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에 있는 봉암사를 다녀왔다.

     

     

     

     

     봉암사(鳳巖寺)는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5번지 희양산(曦陽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희양산은 속리산 줄기와 맞닿고 산 정상에 흰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힘찬 기운을 절로 느끼게 하는 명산이다.

    이 산 중턱의 너른 대지에 위치한 봉암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불교를 이끌어간

    이른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서 희양산문이라 불렀다.

    봉암사는 879년(헌강왕 5)에 지증(智證, 824~882) 대사가 창건하였다.
    지증 대사는 경주 사람으로 법명을 도헌(道憲)이라 한다.

    어려서 영주 부석사의 범체(梵體) 스님에게 출가, 득도하였다.

    이후 여러 선지식에게 불법을 배웠고, 혜은(慧隱) 스님의 법을 이어 받았다.

    혜은 스님은 구산선문의 하나였던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개조

    쌍봉 도윤(雙峰道允, 798~868)의 제자였다.

    점차 지증 스님의 지혜가 널리 알려지자 경문왕은 사신을 보내

    경주로 올 것을 청하였으나 끝내 가지 않았다.

    43세 때인 864년(경문왕 4) 스님이 현계산 안락사(安樂寺)에 머물 때

    심충(沈忠)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희양산의 대지를 헌납하며

    이 곳에 선원을 짓기를 청원하였다.

    스님은, '이 땅을 얻었다는 것은 바로 하늘의 뜻이라.

    이 곳은 승려들이 살지 않으면 도적굴이 될 것이다.'
    라고 하면서 마침내 절을 세우니, 이것이 봉암사의 창건이다.

    소식을 들은 경문왕은 승통 후공(後恭)과 관리를 보내

    절의 산림 경계를 정하게 하고 절 이름을 봉암사라고 정해 주었다.

    이때 정한 사방의 경계는 동쪽으로 구룡봉, 서쪽으로 오봉정,

    남쪽으로 반야봉, 북쪽으로 희양봉이었다.

    한편 희양산 정상의 백운대에 닭바위[鷄巖]가 있어 매일 새벽 정시에 울음소리를 냈고,

    이로 인해 봉암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찾아 가시는길 도로안내
    문경시 중심가 - 3번국도 마성방면 15km, 모곡 - 977번 지방도12km,

    가은읍 - 괴산방면 913번 지방도 12km, 도태교 -희양국교,봉암사방면 4km- 봉암사

     

    봉암사 가는길 -  제천출발 1시간후, 충주를 지나 충북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쌍곡계곡 입구로 들어선다.

     

    소금강 휴게소 부근을 지나고 . . . .

     

    그리고 칠보산 떡바위 들머리를 지난다.

     

    조금 더 진행하면 쌍곡휴게소에서 멀리에 군자산을 바라본다.

     

    군자산을 당겨본다. - 저곳을 오른지도 여러해가 지났다.

     

    그리고 가까이에 칠보산 구봉능선을 올려다본다.

     

    비탐구간인 칠보산 구봉능선의 어느 암봉을 당겨본다. 

     

    언젠가는 한번 오를날이 있겠지 하면서 . . . .

     

    계속 진행되는 517번 지방도로는 해발 530m 제수리재 정상에 닿는다.

    이곳은 백두대간을 하시는 산님들이 자주 이용하는 들,날머리가 되는 곳이다.

     

    제수리재를 너머 전방으로 대야산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대야산도 두번 올랐던 기억이 있다.

     

    관평삼거리에서 문경,봉암사는 좌틀이다. 오른쪽의 괴산쪽 산들도 여러곳 올랐다. 

     

    차량으로 진행하면서 건너편에 용추계곡 대야산 주차장을 바라본다. 

     

    드디어 목적지인 희양초등학교에 두시간여만에 도착했다. 

     

    차량을 주차후, 다리건너 왼쪽 저만치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할거다.

     

    교통혼잡 방지를 위해 문경시에서 개별운전 차량을 통제하며, 이렇게 관광버스를 수십여대 동원하여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는거다. 

     

    버스 승차 ~

     

    우리부부 셔틀버스 종점지점에 내려서는데, 벌써 나가는 줄이 늘어서 있다.

     

    봉암사 사찰쪽으로 올라간다. 

     

    양산천를 건너 저곳으로 계속가면 한뱀이를 올라서

    대간길의 사다리재에서 분지리 안말로 넘어갈수도 있다.

     

    봉암사는 년중 1회, 부처님오신날에만 일반에 공개되는 사찰이다.

    어떤해에는 문경지역에서 개최되는 찻사발축제기간에도 신청자를 제한하여 개방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들어오지 말라는 야그 ~ 

     

    관리실을 지난다.

     

    8년전,3년전에도 이곳 봉암사를 왔었다.

     

    가까이는 희양산 정상이고, 멀리는 구왕봉 정상이다.

     

    매번 올적마다 느끼지만  . . . .

     

    입구에서 부터 산세에 위압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겸손해지는 마음이 드는걸까 ?

     

    갈림길 주차장이다. 이곳은 스님들이나 행사관계자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주차장 갈림길에서 왼쪽길로 진행, 세속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세계인 희양산봉암사 일주문을 들어선다.

     

    민흘림기둥을 한줄로 나란히 세워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짜올린 다포계 형식인 1칸 문 이다.

     

    뒷편에는 봉황문 이라고 . . . .

     

    이런 음각글씨도 . . . . 

     

    진행길 오른쪽으로는 양산천이 시원하게 흐른다.

    내고향이 산넘에 괴산,연풍지역이다 보니 어린시절부터 잘 알고 있는 사찰이다.

    우리가 어릴적에는 봉암사라는 것은 잘 모르고, 그냥 ~  이 사찰을 양산절이라고 불렀던 기억이다.

    그리고 뇌리속에 절이라는 것이 이런 곳이라는것을 알게 해준것도 양산절이라 불렀던 그시절의 봉암사 이다.

     

    저만치 침류교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경내를 들어설거다.

     

    침류교를 건너면 ~

     

    웅장한 남훈루가 자리하고 희양산 화강암벽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한다.

     

    그런데, 이번 봉암사 방문길은 공양부터 해야겠다. 차례 줄이 입구까지 늘어섰다.

     

    줄서서 기다리며 . . . . 

     

    내가 자꾸만 이곳을 찾는것은 부처님도 만나뵙고,

    아마도 이렇게 올려다보는 희양산과 구왕봉의 매력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달전에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에서 저곳 희양산을 올랐었다.

     

    한달전 희양산 산행때 정상부근에서 내려보았던 이곳 봉암사이다.

     

    희양산과 구왕봉 ~  정말로 멋진구간이다.

     

    한참동안의 시간을 기다리다. 

     

    이렇게 절밥 한술과 떡 한덩어리를  . . . .

     

    공양후, 돌아서는 길에 길게 늘어진 행렬의 끝이없다.

     

    남훈루 앞에서 등 접수 ~ 

     

    이렇게 달아본다.

     

     그냥 ~  욕심없이 살고싶다.

     

    그리고 경내를 둘러보기전에 우선, 침류교를 나와서 오른쪽으로 . . . .

     

    마애불로 간다.

     

     오른쪽으로 시원한 계류가 흐르는 이런 길을 . . . .

     

     600~700m 정도 진행한다. 

     

    진행길 소나무 사이로 희양산 정상 ~ 

     

    당겨본다. 정말 멋지다.

     

    암벽틈 사이로 소나무가 자생하고 . . .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백운대,마애보살좌상에 도착했다.
    이 불상은 환적의 찬 선사의 원불인데, 평소에 발원 기도하는 부처님

    또는 보살이라고 전해오며 조각 연대는 고려말기로 추정된다.

    높이는 4.5m, 폭이 4.4m인데 불두주위를 약간 깊게 파서 감실, 닷집

    혹은 집 모양의 장엄물 처럼 만들었으며 광배, 후광을 겸하는 듯하게 처리 하였다.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의 중앙에는 꽃 무늬가 있고,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가슴에 얹어

     연꽃을 들고 결가부좌한 자세이며 무릎은 넓고 높아 안정감이 있다. 

     

    마애불 인증샷 ~

     

    나도 ~

     

    징검다리 ~ ㅎㅎ

     

    마애불상에서 상류쪽으로 이동 ~

     

    이런 틈새를 빠져 나간다.

     

    시원하다.

     

    머리속까지 차갑게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 에게 . . . .

     

    오늘 하루만이라도 . . . .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 . . .

     

     우리부부도 이 부근에 자리잡는다. 

     

    평온한 한낮의 시간이 흐른다. 

     

     남에게 배풀지는 못할지언정 ~  못된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 . . .

     

    한참을 쉬었으니 . . . . 

     

    마애불상쪽으로 내려서면서 . . . .  백운대 암각글씨이다.

     

    최치원의 친필 이라고 . . . .

    이건 ~  은퇴 라고 읽어야 되나 ?

     

    이곳은 한마디로 무릉도원이다

     

    년중1회, 이렇게 하루 몸살을 앓고 나면 ~

     

    다시, 고요한 적막의 평온이 찾아오겠지 . . . . 

     

    이곳에 오신 모든분들 가슴속에 . . . .

     

    이런 순간들이 오랫동안 기억될것같다.

     

    물길을 건너와서 돌아보는 경치 ~ 

     

    그림같은 절경이다.

     

    세상 어느곳에서 이런 풍요로운 느낌을 받을수가 있을까?

     

    연꽃이다.

     

    연꽃같은 마음으로 . . . . 살자.

     

    이곳에 앉으니 . . . .

     

    부러울것도 없고, 욕심도 없으며 홀가분한 마음뿐이다.

     

    그만 가자 ~   다음을 기약하고 . . . .

     

    지난번처럼 시계방향으로 돌아 나간다.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암자쪽으로 올라본다. 

     

    시멘트길이 나오다가 . . . .

     

     이런길을 7~8여분 오르면 ~

     

    저만치에 해우소가 . . . . 

     

    암자로 들어선다. 

     

    조용하다.

     

    졸졸 흐르는 물 소리만 들려온다.

     

    암자 마당에는 커다란 바위가 . . . . .

     

    암자 마당을 가로지르면 이렇게 산책로가 이어지고 . . . .  

     

    조용하게 왔다 가야지 ~

     

    사적대 or   환적대 ?

     

    이렇게 아니온듯 살며시 둘러보고 나오면서 . . . .

     

    다시 올려다 본다.

     

    가까이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멀리서 보는것과는 사믓다르다.

     

    뭔가 ? 

     

    氣 가 느껴지는것 같다. 

     

    내려간다.

     

     큰꽃으아리 ~

     

    색깔이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갈림길로 돌아와서 경내쪽으로 . . . .

     

    경내로 돌아오면서 . . . .

     

    선원 담장 옆으로 진행한다.

     

    담장 너머로 담아보는 선원 ~

     

    당겨보았다. 희양산문태고선원 이라고 . . . .

     

    봉암사 선원의 역사는 저 멀리 신라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증대사 도헌스님이 구산선문중 하나인 희양산문을 이곳에서 개창하였던 것이다.
    이후 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사찰의 소임을 볼때는 이 봉암사에 3천여 대중이 머물러

    동방장과 서방장으로 나누어 정진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 '태고 보우국사'를 비롯한 많은 수행자들이 이곳에서 정진하여

    "동방의 출가 승도는 절을 참배하고 도를 물을 때 반드시 이곳 봉암사를 찾았다" 고 한다.

    이렇게 유서 깊은 선사 봉암사에 근대 선원이 다시금 부흥된 것은 1947년이다.
    해방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봉암사는

    한국불교의 현대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한 결사도량으로 거듭난다.

    이름하여 '봉암사 결사' 가 그것이다.

    봉암사 결사는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우봉스님등 4인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원을 세우고 결사도량을 찾으니 그 곳이 봉암사였다
    그 후 청담. 행곡. 월산. 종수. 보경. 법전. 성수. 혜암.도우등 20인이 결사에 참여하였다.

    당시 결사대중은 공주 규약을 제정하여 추상같은 법도를 세워 오늘날 수행의 근간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사정진도 1950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단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하게된다.

    그후 1970년 초부터 다시 수좌들이 봉암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교신문 기록으로 보건대 봉암사 희양선원은 1972년 향곡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15명의 납자가 정진했다.

    이후 1974년에 서옹스님이 조실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78년까지 향곡스님이 줄곧 조실역활을 하면서 납자를 제접했다.

    1980년경 서암스님이 정식으로 태고선원 조실로 모셔지면서 선원은

    청룡의 승천과 봉황의 날개짓처럼 웅대한 자태를 희양산 자락에 펼치게 되었다.
    1982년 6월 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여 성역화 의지를 표명하였다.

    1982년 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 고시하였다

    그래서 희양산 봉암사 지역은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이어 1984년 6월 제 13차 비상종단 상임위원회에서는 선풍 진작과 종단 발전을 위해 봉암사를 종립선원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1994년 범룡스님이 조실로 추대되어 2년여간 납자를 제접하여오다, 2000년 하안거 해제에 진제스님을 조실로 모셨으며

    그후 2001년 하안거 결제에 서암스님을 다시 조실로추대하여 대중 스님들을 지도 하시다가 2003년 3월 29일 날 열반에 드셨다.

     

    선원입구에는 진공문이라고 . . . . 

     

    범종각 앞으로 이동했다. 

     

    삼층석탑 안내판 ~ 

     

    보물제169호, 봉암사 삼층석탑과 금색전 ~

     

    석탑뒤에 금색전이다.

     

    다른각도로 담아보는 삼층석탑과 금색전이다.

     

     

    찰깍해 본다. 

     

    그리고 오전에 달아 두웠던 등을 찾아서  . . . .

     

    한번 더 찰깍하고 간다.

     

    금색전 옆으로 올라서 삼층석탑이다.

     

    같은 위치에서 범종각이고 . . . .

     

    금색전 편액 ~

     

    뒷편에는 대웅전이라고 . . . . 

     

    조사전 쪽으로 올라선다.

    조사전은 여러 고승들의 공덕을 기념하기 위한 조사들의 진영(眞影)을 모셔져 있다.

     

    조사전 옆으로 지증대사탑 안내판 ~ 

     

    보물 제137호 ~ 

    이 탑은 지증대사의 부도로 9세기경에 팔각형 단형을 기본으로 세운 것이다.

     

    하단은 이런 문양이다.

     

     지징대사탑비 안내판 ~

     

     국보제315호 ~

    지증대사의 공적을 찬양한 부도탑비로 신라 경애왕 원년(서기 924년)에 세운 것으로 귀부와 이수를 완전히 갖춘 석비이다.

    오랜 세월에 파손되어 알아볼 수 없으나 비문은 신라시대 대문호인 고운 최치원'이 글을 짓고 분황사의 혜강 노스님이 글을 새겼다고 ....

     

    내려보는 금색전 앞 마당의 삼층석탑과 범종각이다.

     

    왼편으로는 대웅전 앞마당이고 . . . .

     

    대웅전을 지나서 극락전 이다. 

    이층으로 된 지붕이 보통 극락전과 다른 모습이 신기하다.

    고려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으나

    극락전 및 일주문만 남기고 소실된 것을 복원하였습니다..

    극락전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중층 겹처마 모임지붕의 목탑식건물이다.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현존하는 목탑의 하나라고 하는데,

    특히 기단 및 하층처마는 특이한 구조양식으로 되어 있어 눈여겨봐야할 곳이다.

    상륜부는 목탑의 요소를 잘 갖추고 있으며,극락전 내부에는 어필각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이 이곳에 피난하여 원당으로 사용한 유서깊은 건물이라고 . . . .

     

    그리고 그 옆에는 산신각이다.

     

    대웅전 절마당 ~

    대웅전은 정면 7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치미에 용머리(龍頭)가

    장식되어 있으며, 전각 앞 4마리의 사자상(獅子像)이 수호를 하고 있다.

    창호에는 화려하게 수놓아진 꽃문살로 장식되어 있고,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처리 하였다.
    안에는 근세 제작된 후불목각탱(後佛木刻幀)을 봉안한 것이 특징이다.

    이 외에 신중목각탱(神衆木刻幀), 석가불좌상(釋迦佛坐像), 관음입상(觀音立像),

    대세지입상(大勢至立像), 소종(小鐘)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번에도 이 장소에서 흔적을 남겨본다.

     

    올적마다 이곳이다.

     

    방금 찰깍한 장소에서 왼쪽으로 내려보는 그림이다.

    잠시후, 포장이 쳐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저곳으로 이동을 할거다.

     

     자 ~  이곳으로 이동해왔다.

     

    연꽃을 만드는 체험을 하는 곳이었다. 

     

     이제 공양시간이 끝나가는것 같다.

     

    앞으로는 양산천이 흐른다.

     

    이제 경내에서 주차장쪽으로 내려가면서 . . . .  오른쪽에 보이는 저곳으로 갈거다. 

     

    지난번에 왔을적에는 오지 않았던 곳이다. 

     정진대사탑비 안내판 ~

     

    보물제172호 ~

     

     높이 270㎝, 너비 139㎝, 두께 26㎝. 965년(광종 16)에 건립되었다.

     비신은 청석(靑石)으로 고려 초기의 석비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세부 표현이 강한 조각 수법이다.

    정진대사 긍양(兢讓)은 신라 말·고려 초의 고승으로 성은 왕씨(王氏)이며 900년(효공왕 4) 당나라에 들어가

    25년간 유학하고 돌아와 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고려에서는 태조·혜종·정종을 선문(禪門)에 들게 한

    장본인으로, 965년에 입적하자 왕은 시호와 탑명을 내렸다.

    비문은 당대 문장가 이몽유(李蒙游)가 짓고 명필 장단열(張端說)이 썼다.

     글씨는 2㎝ 정도의 해서로, 구양순체를 바탕으로 부드러움을 더하였다.

    한편, 비문 중에는 ‘聖朝光德二年(성조광덕이년)’이라는 문구가 있어

     고려시대 연호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정진대사탑비에서 조금 더 진행 ~

     

    새로 지어지고 있는 전각이다.

     

    오른쪽은 요사채 ~

     

    요사채 뒷편으로 산객들이 내려오고 있다.

    아마, 산넘어 은티마을에서 올라, 이곳으로 내려오는것으로 추정된다.

    한번은 해봐야지 하면서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코스이다. 

     

    이렇게 봉암사 경내를 둘러보고, 주차장쪽으로 석교를 건너간다.

     

    한여름의 더위가 느껴지는 부처님 오신날이었다. 

     

    올적마다 찰깍하고 가는 장소이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 . . .

     

    저만치 관리실이다. 아직도 올라오는 분들이 있고 . . . .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이 길다. 

     

    한참을 기다리니 뭔가 보이는것 같다.

     

    땡볕에서 1시간을 기다리니 셔틀버스를 탈수있다.

     

    희양초교 부근이 삼거리에서 내렸다.

    전방의 다리를 건너서 차량을 회수하러 간다.

     

    저만치 오른쪽에 초등학교가 있다.

     

    다리를 건너며 양산천이다. 희양산이 괴기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 . . .

     

    초등학교 입구 ~

     

    들어가서 . . . . 

     

    차량을 회수하여 . . . .

     

    가은읍내를 지나고, 마성면소재지를 지나 문경읍쪽으로 가면서 오른쪽으로 주흘산이다. 

     

    가운데 멀리로는 문경새재, 조령산권이고 . . . .

     

    아주 오래전부터 많이 찾았던 조령산권이다.

     

    이화령 터널을 지난다.

    예전에 터널이 생기기 전부터 많이 지나쳤다.

    내 기억으로는 1978년경에 이화령 옛길이 포장된것으로 기억된다. 

    개인적은 수많은 사연이 남아있는 길로 많은 친구들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터널을 나와서 연풍면 소재지를 지나치고 오른쪽에는 율전마을이다.

    가운데 멀리 신선봉 - 지난해 3월7일,산행을 하다가 오른쪽 무릎 인대파열 부상을 당했던 곳이다. 

    그 여파로 지난해에는 많은 날을 출근도 하지못하고 고생했던 시간들이 아쉽게 느껴진다.

    이렇게 부처님 오신날에 찾아본 희양산 봉암사 였다.

    충주지역에 도착되기전 큰 누님에게 전화를 하니 집에 계신다.

    충주 누님댁에서 저녁먹고 느긋하게 제천으로 귀가하니 밤10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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