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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 한옥마을 ~
    쉬는시간 /소풍&여행&기타 2014. 3. 3. 15:44

     

     

     

     

     

     

     

    1박2일간의 호남지역 둘러보기

     

     둘째날 오전일정으로 전북 김제의 모악산 산행을 마치고

     

     전주시 풍남동에 위치하고있는 전주한옥마을의 경기전 입구로 이동하였다.

     

    차량은 이곳 주차장에 자리가없어 멀리 떨어진 한옥마을의 골목길 공터에 주차한후

     

    20여분만에 돌아와보니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점심시간 이어서 복잡했었는가 ?

     

     

     

     

    경기전앞 풍경 ~    그림상으로 보이는 왼쪽건물이 경기전의 입.출구 이다.

     

    매표소 풍경 ~   경기전 입구는 말에서 내리는 곳임을 표시한 하마비,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내삼문, 이삼문 그리고 초상화를 모신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살문의 원음은 홍전문(紅箭門)이다.

             붉을 홍, 화살 전, 문 문. 한마디로 붉은 화살로 된 문이란 뜻이다.

     여기서 붉은색은 우리 세시풍속의 하나인 동지(冬至)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동지는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서 동지를 지나면서 낮의 길이가 점점 질어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동짓날에 제사를 올렸는데 그것은 태양신을 모시는 일종의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태양의 색깔은 음양(陰陽)에 있어 양(陽)의 색인 붉은 색으로 사악한 기운을 내쫓는 색이다.

    그래서 동짓날 먹기도 하고 대문이나 그 근처에 뿌리기도 하는 팥죽의 색도 붉은 색이다.

    홍살문에 단청(丹靑)의 오방색(五方色) 중 붉은 색으로 칠을 한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두 개의 기둥을 하고 그 사이로 붉은 살을 해 놓은 홍살문은 왕릉 능역이나 향교 등에서

    악귀를 쫓는 풍수적 기능을 하는 문임을 알 수 있다.

    이 홍살은 능원이나 향교의 홍살문에만 설치한 것이 아니라 궁궐이나 관아의 대문, 사찰의 금강문과

             천왕문, 종각, 비각 그리고 정려각과 서원, 재실, 민가의 솟을대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구조를 보면 홍살 뿐만 아니라 가운데에는 삼지창(三枝槍)까지 만들어 놓았고

    삼지창의 목 부분에 음양을 뜻하는 태극(太極)이나 삼태극(三太極),

    불교의 만(卍)자 그리고 단청문양을 그려넣기도 하였다.

            이 삼지창은 당파창(鏜鈀槍)이라고도 하는데 당파창은 전쟁을 치를 때 쓰는 군기(軍旗)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무당들이 이 삼지창을 사용하였는데 굿에 정성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쌀 위에 삼지창을 꽂아놓고 그 위로 돼지머리를 걸어 이것이 쓰러지지 않아야 정성이 제대로 들어간 굿이었다 한다.

            결론적으로 홍살(화살)과 삼지창(창)은 쳐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기 위한 풍수적 무기로서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위 홍살문의 기술내용은 빌어온글 이며 단지 악귀를 막기위해서 설치한것으로만 알았는데 이런 깊은 내용까지는 몰랐었다)

     

     

     

    아내가 앞서서 홍살문을 들어선다.

     

    보물 제1578호 이다.  아래내용을 읽어보시길 . . . .

     

    경기전 정전앞에는 가마솥처럼 생긴게 두줄로 여섯개가 배열되어있었다.

     

    아 ~  그렇구나 !

     

    꼭, 읽어 보시길 . . . .

     

    국보 제317호 라고한다.

     

    경기전 정전에서 왼쪽의 작은문을 들어서면 대숲속으로 바람이분다.

     

    대숲에서 먼발치에는 이런 비문이 . . . .   그리고 왼편이 전주사고 라고한다.

     

    전주사고 한곳만 남았었다고 중.고등시절 역사시간에 배운것같다.

     

    나무계단 통로를 통과, 2층으로 올라가본다.

     

    세종,성종 임금님들의 흔적이 . . . .

     

     음, 그랬군아  ~

     

    사관과 사초 ~

     

    전주사고를 나와서 뒷편의 어진박물관으로 이동한다.

     

    박물관 입구의 안내판 ~

     

    태조 이성계 어진 ~

     

    태조어진 안내문 ~

     

    현존 유일이라고 . . . .

     

    춘추관에서 무주에사는 유학 이득서에게 적상산 사고 참봉에 임명하는 임명장이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설천봉쪽으로 내려보면 멀리에 적상산이 조망되었던 기억이 난다.

     

    선조 실록 ~   파란만장한 사연이 들어있겠지 . . . .

     

    인조 실록 ~

     

    문제가 많았던 시대라 여겨진다.

     

     정조 어진 ~

     

     효심이 대단하시었고 조선왕조에서 독서를 가장 즐겨하셨다고한다.

    어느 학자가 쓴 책을 읽어보았는데 그분은 조선역사에서 가장 훌륭하시고

    세계적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지도자였다고 표현을 하시던데 . . . .

     

     

    고종 어진 ~   한많은 세상을 사셨을거다.

     

    고종,순종,영친왕 ~     비운의 왕들이고 . . . .

    일제의 만행을 우리들이 생생하게 알고있는데 요즘 이놈들 행동거지를 보면 정말,미치겠다.

     

     

    그런데,어쩌나 ~  아직도 이 나라는 과거 친일잔존세력이 판 치는 세상이 아닐런지 ?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일제에 항거했거나 징집,징용되어되었던 후손들은

    힘들고 불쌍하게 살아가는데 친일세력 자식놈들은 호의호식하며 잘살고들 있다고 . . . .

    내 아버님 ~  19세의 어린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가서 고생고생하다가 해방후 구사일생으로

    돌아올수있었다고 살아생전에 막내자식인 내게 광복절 즈음이면 늘 말씀하시곤 하셨다.

    몇해전 일제강점기시대에 피해내용이 확인되면 정부에서 보상해준다해서 증빙자료 제출하니

    형님 앞으로 이삼십만원 위로금이 나왔더라고 내게 말하더군 ~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씁슬하였고 . . . . 

    요즘 세태가 어떤가 ?  친일후손들이 조상의 재산을 찾겠다고 오히려 당당한 세상아닌가 ?

    에휴 !  아무생각하지 말고 살아야지 . . . .  더러운 세상인것을 ~

    한마디로 국회의원,장관 및 고관대작들 본인에 이어 자식새끼들 까지 병역기피,세금탈세,

    위장전입,이중국적 등등은  기본으로 깔고 시작하니 . . . .     갑자기 마음이 울쩍해진다.

    우리집안 ~  이놈들이 기본으로 하는거 한가지도 못해봐서가 아니다.

     

     

    다시, 기분전환하고 . . . . 

    어진도 도사,추사,모사가 있었구나 ~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해서 잠시동안 아내가 여왕으로 등극하였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한자어 그대로 해와 달 앞의 다섯봉우리를 그린 그림으로 하늘에 흰 달과

    붉은 해가 좌우로 나뉘어 떠 있고,그 아래로 다섯개의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산 아래로 격랑을 일으키며 출렁이는 파도가 나타나고, 화면의 좌우 양 쪽 끝으로는

    붉은 몸통을 드러낸 무성한 소나무가 짝을 이루며 서있고 한쌍의 폭포가 양쪽으로 그려져 있다.

    이 상징물들은 자연세계에서 선별된 것으로 이런 구성을 가진 작품을 조선시대에는 오봉도,

    요즘에는 해와 달의 상징을 더하여 일월오봉도 또는 일월오악도라고도한다.

     

    그림에서 해와 달은 음양을 상징하며, 다섯봉우리는 오행을 상징하며,

    이런 음양오행들은 곧 우주를 의미하고 이런 우주의 생성과 변화

    음양오행을 대변하는 상징물들을 주관하는 그림의 주인공인 국왕은

    곧 우주의 주재자 또는 우주의 주재를 대신하는 존재와 같은 의미를 부여받을수 있었다.

     

    일월오봉도에 완성은 병풍앞에 왕이 앉아 있어야 그 그림이 완성된다고 하여

     일월오봉도 자체만으로는 미완성 병풍이라 할수 있는데 일월오봉도에는 왕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하늘의 이치를 받들고 인의예지신을 갖추어 부지런하여 만백성의 아버지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담겨있고 또한 이렇게 좋은 정치를 펼치면 폭포처럼

    생명의 기운이 온세상에 고르게퍼져 풍요로울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월오봉도는 아무나 , 아무곳에서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와 격식을 중시하던 조선시대  왕이 앉는 자리 뒤에 놓였으며

    국왕이 야외에 행차하거나 국사를 진행할때에는 작은 일월오봉도 병풍이나 가리개를 설치하였다.

    현재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의 어좌 뒤에서 모두 일월오봉도를 볼수 있으며

    일월오봉도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수없으며 오직 조선에서만 기록되고

    확인되어 조선 고유의 문화와 사상을 반영한 그림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모든 왕 뒤에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으나,

    조선 25대 임금인 철종의 초상화에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를 하던 당시 헌종이 승하하고

    왕위를 계승할 세자가 없어 강화도에 있던 철종을 조선 25대 왕으로 앉히게 되는데

    19세에 왕이 된 철종은 친정을 펼치면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였지만,

    당시 세도정치의 절정을 이루었던 안동 김씨 세력의 견제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일월오봉도의 의미처럼 백성의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했고 좋은 정치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초상화에는 일월오봉도를 그려 넣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오봉도에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위 일월오봉도의 서술내용도 빌어온 내용임을 알려드린다)

     

     

    시간여유가 많았으면 좀더 상세하게 돌아볼수있으련만 그렇지 못하여 마음이 조급하기만하다.

     

    경기전에서 건너편에 전동성당이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후에 저곳으로 이동할거다.

     

    다음에 전주지역을 다시올 기회가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아쉽지만 경기전을 나서며 . . . .

     

    경기전에서 길건너편의 전동성당으로 들어선다.

     

    사적 제288호 ~   전주 전동성당 이다.

     

    입구를 들어서니 경기전과 마찬가지로 많은사람들이 찾고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전북 전주 전동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 이 성당은 천주교 순교지인 풍남문 밖에 세웠으나,

    후에 현재의 자리에 확장하여 지은 것이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보두네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에게 설계를맡겨 23년 만에 완공하였다.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장방형의 평면에 외부는 벽돌로 쌓았으며,중앙과 좌우에 비잔틴 양식의 종탑이 있다.

    내부는 아치형 천장이며 양옆의 통로 위 천장은 아치형이 십자형태로 교차되어 있다.

    성당건축에 사용된 일부 벽돌은 당시 일본 통감부가  전주읍성을 헐면서 나온 흙을 벽돌로 구웠으며,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성당의 주춧돌을 삼았다고 한다.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위 내용은 빌려온 글 ~)

     

    아내가 흔적을 남기고 . . . .

     

    나도 흔적을 남겨본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집안은 오래전부터 절을 다녀온것으로 알고있다.

     

    처가도 마찬가지고 . . . .

     

    그래서인지 ~ 

    아내와 나, 자연스레 산행후 사찰에 들어서면 늘상 마음이 편안해지곤한다.

    그렇다고 타 종교를 배척한다던지 하는 그런 마음은 조금도 가지고있지 않다.

    이런곳도 와보고싶어 지는것을 보면 확실하다. 그런데 가끔씩 내자식들에게 이런말을 하곤한다.

    나중에 너희들이 배우자를 고를때 종교적으로 가능하면 부처님을 믿는사람이면 좋겠다고 . . . .

     

    예정되었던 귀가시간이 촉박해진다.

     

    차량을 주차한곳으로 이동하면서 학인당 앞을 지나친다.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8호 ~

     

    없는시간을 쪼개어 들어서니 예약된 사람들만 들어올수있다고한다. 할수없다. 다음에 이지역을 다시오던지 해야지 . . . .

     

    자 ~  이곳에서 차량을 회수하여 귀가기에 들어선다.

     

     

    이렇게 1박2일간의 호남지역 둘러보기,

     

    소쇄원 - 무등산 - 모악산 - 금산사 - 전주한옥마을(경기전 + 전동성당) 일정이 계획했던데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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